그가 죽인 남자

토머스 하디
"그와 내가 단지
오래되고 허름한 술집에서 만났다면
우리는 함께 앉아 술을 마셨으리라
거리낌 없이 여러 잔의 술을!
하지만 보병으로 배치되어,
서로 얼굴을 노려보며,
난 그를 쏘았고, 그는 나를 쏘았네,
그리고 거기 있는 그를 죽였네.
난 그를 쏘아 죽였네, 왜냐하면 -
왜냐하면 그가 나의 적이었기 때문에
단지 그뿐이지, 물론 그는 나의 적이었어,
그건 확실해, 하지만
그는 군인이 되겠다고 생각했겠지, 아마,
깊이 생각하지 않고 - 바로 나처럼 -
일자리를 잃고 - 가진 것도 팔았고 -
다른 이유는 없었을 거야.
그랬어, 전쟁이란 이상하고 알 수 없는 거야!
넌 사람을 쏘아 죽이는 거야
만약 어느 술집에서 그를 만났더라면
술도 사고, 약간의 돈도 보태어 주었을 텐데."
(번역 / 필자)
토머스 하디(Thomas Hardy, 1840-1928)는 영국의 소설가이며 시인이다. 빅토리아 시대 사회상을 비판하는 사실주의 소설을 썼다.
소설 "테스" (Tess of the d'Urbervilles, 1891)로 잘 알려져 있고, 그 외
"광란의 무리를 떠나" (Far from the Madding Crowd, 1874)
"귀향" (The Return of the Native, 1878)
"캐스터브리지 시장" (The Mayor of Casterbridge, 1886)
"비운의 주드" (Jude the Obscure, 1895)
등의 대표적 소설이 있다.
1902년에 쓰인 이 시는 토머스 하디의 전쟁에 대한 개인적 생각을 담고 있다. 자기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을 죽여야 하는 전쟁의 의미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를 말하고 있다.
당시 진행되고 있던 영국의 식민지 전쟁인 남아프리카 보어 전쟁(1899-1902)에 대한 하디의 비판적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당시 대부분의 영국민들은 영국의 보어전쟁 수행을 지지했었다.
하디는 이 시에서 전쟁을 개인적 이야기로 서술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전쟁이 보통 사람의 일상과 무관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날 뿐이라는 생각을 허물고, 전쟁의 실상을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가깝게 전달하고 있다.
시는 "극적 독백" (dramatic monologue) 형식으로 쓰였다.
첫째 연에서,
'"그와 내가 단지
오래되고 허름한 술집에서 만났다면
우리는 함께 앉아 술을 마셨으리라
거리낌 없이 여러 잔의 술을!'
이라고 하였다.
시인은 전쟁터에서 적을 쏘아 죽였다.
그것을 회상하며, 시인은 그가 죽인 그 병사와 만약 허름한 술집에서 만났다면, 친하게 서로 술을 권하며 마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시고' (wet), '단숨에 여러 잔을 마시고' (right many a nipperkin)는 속어이다. 술꾼들이 서로 격의 없이 마시는 것이 느껴지며, 두 사람의 친밀감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연에서,
'하지만 보병으로 배치되어,
서로 얼굴을 노려보며,
난 그를 쏘았고, 그는 나를 쏘았네,
그리고 거기 있는 그를 죽였네.'
라고 하였다.
실제는 전쟁터에서 서로가 얼굴을 마주 보며 총을 쏘았다. 운 좋게도 그의 총알은 상대방을 맞혔고, 자신은 맞지 않았다.
'얼굴을 맞대고' (face to face)라고 한 것은 두 사람 간 거리의 가까움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처지가 비슷한 것을 상징한다.
서로 간 증오할 필요가 없는 두 사람이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 전쟁의 비극을 부각시키고 있다.
셋째 연에서,
'난 그를 쏘아 죽였네, 왜냐하면 -
왜냐하면 그가 나의 적이었기 때문에
단지 그뿐이지, 물론 그는 나의 적이었어,
그건 확실해, 하지만'
이라고 하였다.
시인은 이 살인의 이유를 설명하려고 한다. 그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적이기 때문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because)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자신을 납득시킬 만한 이유를 찾기 어려움을 암시한다. 특별한 증오나 복수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럴 뿐이지' (just so)라고 말하고 있다. 상대방은 단지 다른 편에서 싸우기 때문에 죽어야 하는 것이다.
적이라는 것 이외에 시인이 수긍할 만한 강력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전쟁의 의미 없음과 부조리를 시사하고 있다.
넷째 연에서,
'그는 군인이 되겠다고 생각했겠지, 아마,
깊이 생각하지 않고 - 바로 나처럼 -
일자리를 잃고 - 가진 것도 팔았고 -
다른 이유는 없었을 거야.'
라고 하였다.
그가 군인이 된 것도 자기와 비슷한 처지였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실직에 가진 재산도 없고, 그러다 보니 자기처럼 불쑥 군에 입대하였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다른 이유는 없었을 거야' (No other reason why)라고 함으로써 다시 한번, 자기와 같은 처지의 사람을 죽여야 하는 전쟁의 무의미함을 강조하고 있다.
다섯째 연에서,
그랬어, 전쟁이란 이상하고 알 수 없는 거야!
넌 사람을 쏘아 죽이는 거야
만약 어느 술집에서 그를 만났더라면
술도 사고, 약간의 돈도 보태어 주었을 텐데."
라고 하였다.
시인은 전쟁을 '이상하고 알 수 없는' (quaint and curious)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전쟁이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상대방을 죽여야 하는 상황이 부조리한 것이다.
서로 술집에서 만났다면, 평소의 그는 술을 사고 그가 돈이 필요하다면 약간의 도움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은 선한 본성을 상대방을 죽이려는 광기로 대체하고 있다고 시인은 시사하고 있다.
※ 표제 그림은 미국 화가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1925)의 "독가스 희생자" (Gassed, 1919)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의 독일군의 독가스 공격의 피해자를 그렸다. 영국 왕립예술학회에서 "1919년 최고의 그림" 으로 선정하였다.
The man he killed
By Thomas Hardy
"Had he and I but met
By some old ancient inn,
We should have sat us down to wet
Right many a nipperkin!
"But ranged as infantry,
And staring face to face,
I shot at him as he at me,
And killed him in his place.
"I shot him dead because -
Because he was my foe,
Just so: my foe of course he was;
That's clear enough; although
"He thought he'd 'list, perhaps,
Off-hand like - just as I -
Was out of work - had sold his traps -
No other reason why.
"Yes; quaint and curious war is!
You shoot a fellow down
You'd treat if met where any bar is,
Or help to half-a-crown."
'토머스 하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짧은 영시 (83-2) 토머스 하디 / 어둠 속의 지빠귀 The darkling thrush (2) | 2026.03.0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