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영시 (83-2) 토머스 하디 / 어둠 속의 지빠귀 The darkling thrush
어둠 속의 지빠귀1

토머스 하디
내가 잡목숲으로 통하는 문에 기대어 섰을 때,
서리는 유령처럼 잿빛이었고,
겨울의 마지막 여운으로
약해져 가는 낮의 눈은 황량해졌네.
얽혀진 담쟁이넝쿨은 하늘을 가로지르며
부서진 현악기의 줄처럼 뻗었고,
그리고 가까이 서성대던 모든 사람들은
집안의 벽난로를 찾아갔네.
대지의 날카로운 형상은
삐쳐 나온 세기의 시체인 듯했고,
구름 낀 하늘은 그의 묘지이고,
바람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탄식이었네.
생명의 싹과 탄생의 옛 맥박은
쇠미해져 메말랐었고,
지상의 모든 생명들은
나처럼 열정을 잃은 듯했네.
갑자기 한 목소리가 들려왔네
머리 위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에서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끝없는 기쁨의 저녁 기도 소리가,
한 마리 늙은 지빠귀, 약하고, 여위고, 작은,
세찬 바람에 휩쓸린 깃털로,
짙어가는 어둠에
그의 영혼을 그렇게 내던지기로 하였네.
그러한 황홀한 기쁨의 노래를
부를 이유가
멀거나 가까운 주변의
지상의 사물에서는 찾기 힘드니,
난 생각할 수 있었네
밤 작별 인사의 행복한 그의 노래 속에
축복받은 희망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고,
그는 알고 나는 모르는 어떤 희망이.
(번역 / 필자)
토머스 하디의 이 시는 1900년 12월 29일 발표되었다. 황량한 겨울 풍경을 보며 시인이 느끼는 쓸쓸한 심경을 적고 있다.
한편으론, 19세기가 끝나고 새로운 세기를 맞음에 따라, 세기말의 서양 문명을 돌아보며, 문명의 쇠퇴, 소외된 인간의 절망과 고독, 그리고 재생과 부활의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시는 황량한 겨울 풍경을 묘사하고 있고, 잡목숲 가에서 겨울 풍경을 보고 있는 시인은 우울하다.
대지, 하늘, 바람도 죽음을 연상시키고, 지상의 모든 생명들은 시인의 마음처럼 열정을 상실하고 절망하고 있다.
그때 갑자기 한 늙은 지빠귀가 아름다운 기쁨의 노래를 부른다.
시인은 자기는 모르지만 새는 아는 어떤 축복받은 희망이 거기에 담겼다고 생각한다. 밝아오는 새해, 새로운 세기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부활의 희망을 조심스럽게 기대하고 있다.
제목 "어둠 속의 지빠귀" (The Darkling Thrush)에서 'darkling' 은 '어둠 속의, 또는 어두워져 가는' 의 뜻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약해져가는' 겨울 햇살과 '쇠퇴하는' 서양 문명을 동시에 암시하며, 시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darkling' 은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단어이나, 존 밀턴의 "실낙원", 존 키츠의 "나이팅게일에 바치는 송가", 매슈 아널드의 "도버 해안" 의 시에서 특징적으로 쓰인 바 있는 영시에서는 족보가 있는 단어이다.
첫째 연에서,
시인은 잡목숲으로 통하는 문에서 겨울 풍경을 보고 있다.
'서리' (frost),
'유령처럼 잿빛' (spectre-gray),
'마지막 여운, 찌꺼기' (dregs),
'황량한' (desolate),
'약해져가는' (weakening),
'부서진' (broken),
'유령처럼 서성대던' (haunted)
등의 이미지는 차가운 겨울 저녁의 암담한 절망감을 부각시키고 있다.
'부서진 현악기(lyre, 수금)의 줄' 은 조화롭지 못한 삶이나 형상을 상징하며, 시인의 삶에 대한 비관적 시각을 반영한다.
집안의 따뜻함을 찾아 집으로 간 사람들도 '유령처럼 서성댄다' (haunted)라고 하여 어두운 분위기로 일관하였다.
둘째 연에서,
암울한 분위기는 더욱 강하게 묘사되고 있다.
대지의 날카로운 형상은 '삐쳐 나온 세기의 시체' (The Century's corpse outleant)처럼 보인다고 했다.
'삐쳐 나온' (outleant)은 '관 밖으로 나온' 이라는 뜻으로 19세기가 20세기로 넘어가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였다.
'날카로운 형상 - 시체의 굳은 모습을 상징' (sharp features),
'세기의 시체', (The Century's corpse)
'지하묘지' (crypt),
'죽음의 만가' (death-lament),
'쇠미해져 메마른' (shrunken hard and dry),
'열정을 잃은' (fervourless)
등의 이미지가 역시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
앞에서는 개인의 주관적 우울한 심경을 이야기하였다면, 점차 지상의 모든 생명이 생명력을 잃고 '메말라 비틀어져가는' 쇠락과 죽음의 이미지로 바뀌고 있다.
셋째 연에서,
지금까지의 황량한 겨울과 죽음의 이미지에 불현듯 희망의 메시지가 도입되고 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끝없는 기쁨의 저녁 기도 소리'
(a full-hearted evensong
Of joy illimited)
는 겨울과 절망과 죽음을 극복하는 강한 메시지이다.
하지만 토머스 하디는 희망의 메신저로 통상적으로 선호되는 나이팅게일이나 비둘기 대신 평범한 지빠귀를 선택하고 있다. 더구나 '늙고, 약하고, 여위고, 작은' (aged, frail, gaunt, small) 지빠귀이다.
'세찬 바람에 휩쓸린' (blast-beruffled) 이라고 하여, 세찬 겨울바람을 이겨내었음을 암시한다.
'늙고, 약하고, 여윈' 지빠귀는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영혼을 짙어가는 어둠에 맡기겠다고 한다.
한 마리 평범한, 늙고, 연약하고, 여윈, 작은 새가 죽음을 앞두고 매서운 겨울바람을 뚫고 솟아오르며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광경은 진정한 희망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연에서,
시인은 지빠귀의 노래에서 조심스럽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고 있다.
희망과 신앙적 믿음을 상징하는 것이 보인다. '그러한 황홀한 기쁨의 노래' (carolings of such ecstatic sound)에서 'caroling' 은 크리스마스를, '축복받은 희망' (blessed Hope)은 '신, 망, 애' 의 기독교적 가치를 연상시킨다.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이유를 '멀거나 가까운 주변의 지상의 사물에서 찾기 힘들다' 라고 하는 것도 천국을 상기시킨다.
하디는 이러한 희망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그는 19세기의 유럽 문명의 상황과 미래를 암울한 시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지빠귀의 노래에서 특별히 기뻐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알 수 없는 축복 받은 희망을 지빠귀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마저 포기한 것은 아니다.
하디가 현재의 시각에서 보는 인류의 삶과 문명은 암울하고 생명력을 잃고 있다고 보나,
다가오는 새로운 세기는 저 늙고 약한 지빠귀가 황홀한 노래를 부르듯, 인류가 삶의 역동성을 다시 되찾을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1 'thrush' 는 '지빠귀' 로 지빠귓과의 새를 통틀어 말한다. 개똥지빠귀, 검은지빠귀, 노랑지빠귀, 붉은배지빠귀, 호랑지빠귀 등이 있다. (사진 1)

※ 표제 그림은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해돋이" (Sunrise, 1872)이다.
The darkling thrush
By Thomas Hardy
I leant upon a coppice gate
When Frost was spectre-grey,
And Winter's dregs made desolate
The weakening eye of day.
The tangled bine-stems scored the sky
Like strings of broken lyres,
And all mankind that haunted nigh
Had sought their household fires.
The land's sharp features seemed to be
The Century's corpse outleant,
His crypt the cloudy canopy,
The wind his death-lament.
The ancient pulse of germ and birth
Was shrunken hard and dry,
And every spirit upon earth
Seemed fervourless as I.
At once a voice arose among
The bleak twigs overhead
In a full-hearted evensong
Of joy illimited;
An aged thrush, frail, gaunt, and small,
In blast-beruffled plume,
Had chosen thus to fling his soul
Upon the growing gloom.
So little cause for carolings
Of such ecstatic sound
Was written on terrestrial things
Afar or nigh around,
That I could think there trembled through
His happy good-night air
Some blessed Hope, whereof he knew
And I was unaw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