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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패스턴

짧은 영시 (132-4) 린다 패스턴 / 윤리학 Ethics

윤리학

렘브란트의 "창문가의 소녀" (Young girl at the window, 1651)

 

린다 패스턴

 

 

아주 오래전 윤리학 시간에

선생님은 해마다 가을이면 이 질문을 했다,

만약 박물관에 불이 난다면,

어느 걸 구하겠는가, 렘브란트 그림을,

또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를?

딱딱한 의자에 불편하게 앉은 우리는,

그림이나 할머니에 관심 없었기 때문에,

한 해는 사람의 생명을, 그다음 해는

예술을 택했고, 항상 마지못해 그랬다.

어떤 때는 그 여자가 내 할머니 얼굴처럼 보였다,

평소의 그녀 부엌을 떠나, 바람 휑한,

반쯤 상상 속의 박물관을 방황하는.

어느 한 해는, 영리한 듯이, 난 대답했다,

그녀 자신이 결정하면 되잖아요?

린다, 선생님은 말했다, 넌 책임을

회피하고 있어.

올해 가을 난 박물관에서

나 자신이, 진짜 렘브란트 그림 앞에,

거의 할머니가 되어 서 있다.

액자 속 그림의 색조는 가을보다 어둡고,

심지어 겨울보다 어둡다 - 땅의 갈색은,

비록 땅의 가장 빛나는 요소들이

캔버스 속에 불타오르고 있지만. 난 이제 안다,

여자와 그림과 계절은 거의 하나이며,

그 어느 것도 아이들이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번역 / 필자)

 

 

린다 패스턴의 시는 읽기 쉽고 뜻이 분명하다. 간결한 일상의 언어로 평소 우리가 말하듯이 시를 쓴다. 모호하지 않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반짝이는 기지와 생각은 종종 읽는 사람에게 깊이 음미하는 재미를 준다. 이 시도 그중의 하나이다.

 

윤리학 시간에 해마다 선생은 학생들에게 질문을 한다. 미술관에 불이 나면, 렘브란트 그림을 구하겠는가, 아니면 할머니를 구하겠는가라고 묻고 있다.

 

둘 다 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수백 년간의 인류의 문화가 응집되어 있는 값을 따질 수 없는 그림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곧 죽을, 별 가치 없어 보이는 할머니를 구할 것인가라는 상황적 윤리의 문제이다.

 

학생들은 이러한 가정적 상황에 관심이 없다. 한 해는 사람의 목숨이 중요하니 할머니를 구한다고 했고, 한 해는 무한한 가치가 있는 인류의 유산인 그림을 구하겠다고 했다.

 

선생이 굳이 선택하라고 하니, 내키지 않지만 그렇게 대답했다.

 

어떤 때는 그 할머니가 자기 할머니처럼 생각될 때가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평소의 그녀 부엌을 떠나, 바람 휑한,

반쯤 상상 속의 박물관을 방황하는.'

(leaving her usual kitchen to wander

some drafty, half-imagined museum.)

 

자기 할머니 모습이 떠오른다고 하였다.

 

어느 한 해는 시인은, 자신이 '영리한 것처럼 느끼며' (feeling clever), 왜 당사자인 할머니가 결정하도록 하지 않느냐고 대답했다.

 

선생은 시인에게 그건 '책임을 회피하는' (eschews the burdens of responsibility) 말이라고 하였다.

 

시인은 나이가 들어 - '거의 할머니가 되어' (old woman, or nearly so) -, 어느 가을, 가정이 아닌, 진짜 박물관을 방문하여 진짜 렘브란트의 그림 앞에 서 있다.

 

그림 속에 있는 갈색 땅의 색조가 가을보다 어둡고, 심지어 겨울보다도 어둡다고 시인은 생각한다.

 

그러면서 시인은 이제 알 것 같다. 윤리 선생이 제기한 할머니와 그림, 그리고 지금의 계절 가을이 '거의 하나' (almost one)이며, 이를 나누어서 생각할 수 없다고 믿는다.

 

어린 학생들이 어느 것을 구하느냐고 고심하며 선택할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난 이제 안다,

여자와 그림과 계절은 거의 하나이며,

그 어느 것도 아이들이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I know now that woman

and painting and season are almost one

and all beyond the saving of children.)

 

시인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의 인간적 존엄성을 선택의 문제로 다루지 말 것을 시사하고 있다.

 

 

표제 그림은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Lembrandt, 1606-69)의 "창문가의 소녀" (A young girl at a window, 1651)이다.

 

 

Ethics

 

By Linda Pastan

 

In ethics class so many years ago

our teacher asked this question every fall:

If there were a fire in a museum,

which would you save, a Rembrandt painting

or an old woman who hadn’t many

years left anyhow? Restless on hard chairs

caring little for pictures or old age

we’d opt one year for life, the next for art

and always half-heartedly. Sometimes

the woman borrowed my grandmother’s face

leaving her usual kitchen to wander

some drafty, half-imagined museum.

One year, feeling clever, I replied

why not let the woman decide herself?

Linda, the teacher would report, eschews

the burdens of responsibility.

This fall in a real museum I stand

before a real Rembrandt, old woman,

or nearly so, myself. The colors

within this frame are darker than autumn,

darker even than winter — the browns of earth,

though earth’s most radiant elements burn

through the canvas. I know now that woman

and painting and season are almost one

and all beyond the saving of children.